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시인
- 詩作NOTE --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의 새 아침이 밝았다. 올 해는 1936년(44²)에 이어 89년만에 돌아온 제곱수(45²) 연도이다. 올 해에는 대한민국의 광복절,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으며, 아울러 21세기 최초의 윤달 광복절을 맞는다. 광복절의 음력 날짜는 윤 6월 22일이다. 또한 올 해는 21세기의 4분의 1이 채워지는 해다. 달력을 펼쳐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주 5일 근무 기준 대체 휴일이 적용되지 않는 주말 공휴일이 없는 해다.
그렇지만 이 달의 말미에 들어있는 설날 연휴는 2005년 이후 20년 만에 돌아오는 9일 연휴인데, 1월 28일~1월 30일이 공식적인 휴일이라 앞뒤로 붙은 평일에 휴가를 내면 물경 9일이나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두 날이 아예 임시공휴일로 지정될 수도 있다. 아무튼 민족의 대이동이 예견되어 있고 줄줄이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분주할 게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놀러 갈 사람은 가고, 즐길 사람은 즐긴다. 마치 금세 세상이 끝날 것 같이 남의 일에 호들갑을 떨다가도 내 개인적인 유흥이 걸리면 그 어떤 명분이나 공익도, 남의 것은 즉시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무튼 새 해의 태양은 이미 밝게 떠올랐다. 그러니 지금은 모두가 희망을 노래할 때다. 새로운 소망으로 새 계획을 세우고,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꿈들을 열거하며 하나 하나 하늘에 축원을 빌 때다. 그런데 필자가 고른 오늘의 시는 어째 색깔이 영 음습하고 눅눅하다. 새 해의 첫 날에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이런 시를 올 해의 화두로 삼는 필자의 속셈이 짓궂다. 누구에게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걸까? 알다가도 모를 심사에 쓴 웃음 머금게 된다.
자! 그런데 잘 보자. 불과 하루 전인 어제는 분명 작년이었다. 그리고 그 해의 달력 마지막 장 그 즈음에는 우리나라의 온 국민이 울분과 혼란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면서 위 아래와 앞 뒤를 구분하기 힘든 지경에 처하는 대 사건이 있었다. 지표도 잃고, 방향감각조차 상실되어 하늘만 올려다보며 탄식을 하던 밤이 불과 한 달도 안 지났다. 그리고 아직도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다. 물론 극적으로 마지막 고비는 넘기고 순서에 따라 하나씩 빛을 향해 나가는 조짐은 보이지만 그래도 당장 안심할 수는 없다.
또한 현재 처해진 상황은 정치적안 문제만 심각한 게 아니다. 불과 며칠 전 엄청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하였다.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국민들 모두를 멘붕 상태에 빠지게 만든 이번 무안공항의 사고는 대비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대형사고였다. 누구의 잘못이나 탓을 운운하기 이전에 언제이고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이지만, 누구도 막상 닥치기 전에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각심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된다. 모쪼록 빠른 시간에 이 사고의 뒤처리가 모두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가슴 아프고 원통한 유가족들께도 우리 모두가 절절한 위로를 드려야 하겠다.
그런 엄중한 시기이거늘, 새 해를 맞이했다 하여 혹여 들뜬 기분에 취해 경거망동하거나,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적인 오락과 취미를 충족하기 위해서 지나친 행동과 소비에 탐닉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우리가 처해있는 이 비상 상황은 정치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노력할 사안이 아니고, 특별히 이해 관계가 얽힌 당사자들끼리 풀어야 할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된 수레바퀴가 굴러가는가를 엄중히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컨대 필자의 노파심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작은 바람이 있어 오늘 이 시를 새 해의 첫머리에 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필자도 전에는 새 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지면에 시를 적을 때면 그럴 듯한 제목으로, 웅장하고 기상 어린 시를 소개하면서 뭇 사람들의 호연지기를 자극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새 해 첫날에는 의례껏 천편일률적으로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영광과 번영을 노래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니, 필자라고 별쭝난 소재를 택하지는 않았으리.
그러나 올 해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우리 모두는 직접 우리나라를 이끄는 선구자요 역사의 먼 길을 가는 개척자라는 심정으로, 진심 어린 자세로 경각심을 갖고 이 첫날을 수놓아야 한다. 이 한 해가 다 가고 장대한 마무리의 정점에 설 때 한 해를 진정 잘 살아냈노라고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오늘 두 손 맞잡고 다짐을 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민족적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지고 또 다져서 굳건하고 튼실한 나라를 이루어가자고, 그리고 그렇게 이룩한 자랑스러운 나라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말이다.
마치 애국 열사인 양 분에 넘치는 소리를 늘어놓자니 실은 뒤가 좀 켕기기는 한다. 비상계엄이라는 불법적인 명제로 인해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그 때 필자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던가? 좀 늙고 건강도 별로 안 좋았던 관계로, 게다가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도 해서, 그저 티비 앞에서 망연자실하여 종종걸음이나 치고 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뛰쳐나가 진심어린 행동과 열정을 보여준 인파를 보면서 부끄럽고 민망하여 숨 몰아쉬기나 했던 주제에 새삼스럽게 무슨 시국강연을 하고 있는 건지...
어쨌든 모든 분들의 올 한 해가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하시길 기원드리고 싶다. 좋은 사람을 마음에 가득 담아 둔 이는 정말로 행복한 것이다. 만남이 주는 기쁨도 기쁨이겠지만, 멀리서 서로를 생각하고 추억을 공유하며, 서로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다면, 그 자체로 힘이 되고 기쁨이 되기 마련이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를 응원하고, 가끔은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연락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자체가 행복이다.
우연히 만나더라도 늘 만나며 지내는 사이처럼 주위의 공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관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좋은 사람 하나는 담아 두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넓은 정원 속에 예쁜 꽃들이 필 수 있도록, 올 한 해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 ‘풍연심(風憐心)’이란 말이 있다. “바람은 마음을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지 모른다.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상대적으로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데, 결국은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것을 모르는 채 말이다.
세상이 힘든 것은 부러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상대방의 지위와 부와 권력을 부러워하면서 늘 자신을 자책하기에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부러워하고, 부자는 권력을 부러워하지만, 권력자는 가난하더라도 건강하고 화목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결국 자기 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나이다.
우리가 힘을 내서 올 한 해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덕목이 필요할까? 바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희망이다. 희망이란 비단 크고 엄청난 것들만은 아니다. 그것은 작고,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숨겨진 것들인지도 모른다. 언뜻 보기에는 잘 보여지지 않는 흐릿한 영상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희망이란 그것을 아끼고 키워올리는 사람에게는 넝쿨처럼 자라서 벽을 뒤덮는 담쟁이같이 그의 삶을 견고하게 하고, 더 높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깊고 험한 절망의 계곡에서도 작은 씨앗 하나 만큼의 희망만 있으면, 담쟁이 넝쿨처럼 자라 절망의 계곡을 뒤덮는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올 한 해 동안 멋진 삶으로 살자. 희망은 바로 힘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작고 깊이 숨겨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걸 찾아내서 정성껏 씨뿌림하고, 잘 가꾸어 튼실한 열매로 맺게 하는 우리의 진솔한 노력이 있다면 올 한 해는 필경 우리에게 평화와 축복과 사랑을 가득 안겨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