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의 초대시 '꿈속의 위로"

  • 등록 2025.06.03 14: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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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내일을 힘 내서 살아가리라. 그게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한,,,

 

 

림삼/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예컨대 ‘호국영령의 달’이라면 단어의 뜻 그대로 나라를 위해 산화하신 영령을 기리고 공경하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기념의 달이라는 뜻이다. 비단 이 한 달만을 그렇게 생각하고 의미를 두자는 건 아닐 게다. 오늘날 이렇게 번영한 국가를 만드는 데 초석이 되고 밑거름이 된 조상들의 거룩하고 창대한 공적이 어찌 잠시 잠깐 기억하고 잊을 정도로 미약할 수 있겠는가? 늘 잊지 않고 뼈 속 깊이 새겨놓고 있어야 할 우리의 의무이며 사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이 달에는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기록들이 즐비하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민족적 비극인 전쟁을 겪은 우리인데, 긴 세월이 흐르고 난 뒤인 현대에 와서는 그 역사적 교훈과 증거를 일일이 다 되짚어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처참한 역사 자체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마치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처럼 실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안보와 이념의 각성을 추구하면 시대에 동떨어진 옛 시절의 사상적 분란에서 기인한 해프닝 쯤으로 여기는 과오도 자주 범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적인 유불리와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국군과 군사 장비의 중요성이 심각하게 손괴되고, 더 나아가서 군비 축소와 군대의 약화라는 실상도 어처구니 없는 명분에 쫓겨 나날이 후퇴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자칫 되돌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씻지 못할 큰 역사적 오명이 유발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좌불안석이다. 굳건하고 영광된 국가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절대적인 사명이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밤 잠을 설칠 정도로 원천적인 근심이 탑 쌓아간다.

 

해마다 6월이 되면 7년 전에 작고하신 아버지가 더 생각난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하셨다가 상이용사가 되시고 평생을 그 후유증에 시달리셨지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시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각종 자그마한 편의를 감지덕지하는 마음으로 받으시면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아오셨던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투철한 애국심을 가진 천생의 용사이셨다. 언제나 국가의 조치나 정책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진행하는 거라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90평생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삶을 일구셨었다.

 

작고하신 후에도 극진한 예우와 태극기, 그리고 관련 요원들의 운구와 조총의 성대한 의식을 받으면서 소천하시고, 지금은 국가에서 제공한 대전 현충원의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계시지만, 사실 아버지의 평생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으셨다. 머리 한 쪽에 자리잡아 수술도 불가능하게 했던, 엄지손톱보다도 큰 포탄의 파편 때문에 신경이 눌려 평생 동안 수전증과 신경통에 시달리시면서 약을 늘 달고 사셨지만, 그럼에도 경제적인 사회 활동은 원활하게 수행하지 못하시는 상태에서도 늘 나름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셨다.

 

전국장로연합회 부회장으로 크리스찬으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 없을 만큼 많은 봉사와 선교, 교회 개척에 앞장서셨고, 지역사회의 멘토 역할인 교경협의회장으로서 오랜동안 수많은 상담과 교육을 진행하셨으며, 재향군인회의 원로로 각종 모임과 행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시면서 쓰러지시기 직전까지 노익장을 과시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홀리클럽의 초대 회장으로 새로운 문화와 특별한 종교적 영역의 확대에도 열정을 기울이셨다. 그렇게 화려하고 다양한 경력을 보유하시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성원을 한 몸에 받으시다가 작고하셨으니 아마도 별다른 회한과 아쉬움은 없으셨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불효가 되는 판단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아버지의 평생에는 비단 양지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는 이런 아버지를 보필하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슬하의 4남매의 양육을 위해 헌신하시면서 한 평생 뛰어난 명예도 드러나는 공적도 없이 희생하신 어머니가 존재하셨음이다. 아버지보다 불과 5개월을 더 이 세상에 머무셨던 동갑내기 어머니는, 작고하신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옆자리에서, 늘상 수고로웠던 영육의 피로를 다 내려놓으신 채 편한 영면을 취하고 계신다.

 

우리 4남매, 그런대로 잘 자라게 해주신 공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은혜다. 큰 아들은 대한민국의 육군참모총장으로 키워내셨고, 이 둘째는 볼품 없지만 글을 쓰는 글쟁이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성을 전달하는 배달부 역할로 성장시키셨고, 세째 아들은 비록 지금 미국시민이 된지 35년이 되었지만 활발한 사회활동과 더불어 현지에서 존경받는 장로님으로 지역사회의 멘토로 자리매김 되게 하셨으며, 막내인 딸도 현재는 은퇴를 했지만 평생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어린이집 원장 역할을 잘 수행하게 만들어주셨다. 평생 경제 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셨던 아버지이셨으니 그 책임을 누가 있어 오롯이 담당했겠는가?

 

그럼에도 이런 훌륭한 어머니의 생애에 대해서 칭송하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겉으로 드러난 명성과 치적은 없지만 가족들을 보듬고 살피면서 항상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모범적인 솔선수범으로 교훈을 주신 어머니, 언제 어디서나 원칙과 규정을 준수하고 잘못된 길은 바라보지 않도록 가정교육에 투철하셨던 어머니를 오늘 새삼 그려본다. 생계를 위해서 어떤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그 처절한 도전의식을,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리라 다짐하시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너끈히 이겨내신 불굴의 의지를 오늘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어머니는 당연히 그 자리에 계시는 걸로 여겼던 지난 날의 잘못된 관념, 어머니는 당연히 아버지를 보필하고 자식들을 양육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던 철없던 시절의 치기어린 생각들이 오늘 선명하게 되새겨지면서 필자의 양심을 짓누른다. 드러난 영광과 결실은 우리들의 몫이고, 눈에 띠지 않는 희생은 어머니의 역할이라고 단순하게 간주했던 그 우매함이 이 아침에 필자의 가슴을 호벼판다. 아! 어머니~ 이 불효막심한 자식은 어찌해야 합니까?

 

그저 철 따라 몇 차례 조화 몇 송이와 캔커피나 한 잔 사서 부어드리는 걸로 할 도리를 다 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따금 그리워지는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이만큼 추모의 회상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도 없을 게라 스스로 자위하는, 그리고 아버지에 관한 글은 자신있게 쓰면서 어머니를 소재로 해서는 쓸 내용이 없으니 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리는, 이 자식이 여기 있나이다. 부디 벌해주소서, 어머니!

 

그러고보니 오늘은 시작노트를 이용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잡다하기만 한 일상의 기록을 고백하다가 지면을 다 채우고 말았다. 마치 어린 아이의 일기같기도 한, 두서없는 고백의 편지같기도 한, 그런 치졸한 내용으로 지면을 장식하니 독자들에게 심한 미안함과 자괴감을 동시에 느낀다. 어쩌면 ‘호국영령의 달’이라는 이 제목이 필자를 엣날 추억과 회한의 시절로 잡아끌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하루만 조금 더 감상에 젖어 있다가 떨치고 일어서리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내일을 힘 내서 살아가리라. 그게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한,,,

 

관리자 기자 news33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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