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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림삼의 초대 詩 '가을산행"

흔적 없이 사라져갈 허무(虛無)의 동산에 영혼을 촉촉히 적셔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가슴은 사랑이다.




 림삼 / 칼럼니스트 .작가

 특전사 검은베레 역전의 용사


- 詩作NOTE -

‘림삼 제 5시집’인 ‘비 내리는 날 오후’에 수록되어 있는 시다. 40대이던 불혹의 시절 가을의 도봉산 산행 중에 지은 시로 기억한다. 그 때나 이제나 가을의 산은 한결로 황홀하다. 존재하는 어떤 찬사로도 표현하지 못할 굉장한 아름다움이 지천에 널려 있고, 오가는 길목마다 발에 밟히는 엄청난 낙엽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득 모아담고 우리를 벗한다. 예컨대 가을의 산은 세상의 가장 오묘한 자연미를 오롯이 드러내며 천연덕스레 주저앉아 있음이다.

세속에 찌들어 구겨져있던 마음의 주름을 펴고, 짓눌려진 오욕의 찌꺼기들을 하나로 털어내어 새로운 사람 됨됨이를 만들어내는 데는 가을산만 한 데가 없다. 웅크러든 마음의 부담들을 죄다 덜어내고 거듭나는 충족감으로 다시 일어서고 싶다면 잠시 짬을 내서 가까운 어딘가라도 좋으니 작심하고 가을산에 오르면 된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호연지기와 더불어 폐부에 가득 들어차는 행복감에 아마도 흠씬 눈물이 흘러내리리라. 감동에 겨워 감격에 젖어, 그리고 저절로 스며나는 감정의 폭포에 스스로 놀라, 뭉클 소름돋는 걸 아마도 절절히 느끼게 되리라. 그것이 바로 가을산이 갖는 마술이며, 가을산이 주는 기적의 체험이리라.

장황한 준비도 필요 없고, 구태여 오랜 시간 따로 덜어내려고 애쓸 이유도 없다. 그냥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여건에 맞춰서, 부담 없는 지근거리에 있는 아무 산이라도 좋다. 거기에 가을이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오솔길 있다면 그 길에 항께 몸을 담으면 된다. 그저 다른 생각 없이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끝이 없는 길로 자신조차 잊고 걸어가다 보면 나타나는 또 하나의 현실, 정신 차리고 기운 다잡아 가을산에서 느낀 가득참 있다면 그제사 마음으로 느끼면서 되돌아 내려오면 되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하산한 다음에는 가을산에서 배워온대로 착하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거다. 어려울 것 없고 거추장스러울 것도 없다. 다른 하나의 시작점을 오로지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진솔한 마음만 지니면 되는 걸, 뭐 그리 힘겹게 각오를 다지고, 격식을 따지고, 채비를 갖추려고 번잡하게 서두르고 있을 참인가? 이 짧은 계절 가을이 저물려 한다. 더 늦기 전에 빨리 나서자. 가을산으로 오르자. 얼른!

수원시 영통구 ‘단오어린이공원’에는 수령이 무려 500년이 넘고 높이는 33m가 넘는 느티나무가 있었다. 조선 시대 때부터 단오절이면 사람들이 나무 주변에 모여 전통놀이를 즐기던 유서 깊은 나무였다. 1790년 ‘정조’ 때 이 나무의 가지를 잘라 ‘수원화성’의 서까래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나라에 어려움이 닥칠 때 나무가 구렁이 소리를 내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역사적인 나무가 지난 6월, 폭우와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부러져 버렸다. 거대한 나무줄기가 사방으로 찢어진 처참한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고 슬퍼했다.

하지만 진짜 놀랄 일은 그 이후 벌어졌다. 바람에 꺾일 정도로 늙고 약해진 나무였고 줄기가 부러지고 찢어진 나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나무의 생이 다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무는 살아있었다. 늙고 부러졌지만, 그 뿌리는 아직 생생히 살아남아 새로운 새싹과 줄기를 틔운 것이다. 20여 개의 새싹 중 긴 것은 이미 1m가 넘는 줄기가 자라났다. 남은 것이 없는 것 같고,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은 부러진 나무에서도 새싹이 돋아난다.

그 어떤 절망의 끝에도 반드시 희망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구름 뒤에는 항상 빛이 존재한다. 가을산에 서면 느낄 수 있는 많은 진실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다가오는 건 생명의 윤회다. 수많은 낙엽들이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그 많은 낙엽들을 잃어버린 나목들이 발가벗고 서서 마치 생을 다한 것처럼 추워 떨고 서있지만 필경 이듬 해 봄이면 다시금 파릇파릇 새 잎을 솟아나게 만드는 오묘한 힘이 나무들에게는 숨어있다. 생명을 잉태시키는 위대한 힘이 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상황이 모든 생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얄팍한 식견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을산의 나무들은 오랜 시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역사와 세월을 대변하면서 우리에게 진리를 심어주고 있다. 일천한 지식으로 마치 세상 전부를 알고 있는 듯 오만을 떠는 인간들의 낮은 인격을 넉넉한 품으로 다 감싸주면서 가을산의 나무들은 표표히 웃음 짓고 서있다.

그 푸르고 넓은 무한의 사랑을 가지마다 담고 넌지시 일러주고 서있다.

조선 후기 유명한 시인이자 독서가인 ‘백곡(白谷)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이야기다. 조선의 유명한 학자들은 5살에 ‘사서삼경’을 떼었다는 등의 일화가 흔하지만, 김득신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아서 10살이 돼서야 글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김치’는 서두르지 않았다.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김치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아들이었다. 김치는 그런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 말했다.

“득신아, 학문의 성취가 늦어도 성공할 수 있다. 읽고 또 읽으면 대문장가가 될 수 있다.” 그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부단히 노력했다. 그 노력은 무려 한 번 읽은 책을 1만 번 이상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기 백이전(伯夷傳)’이라는 책은 11만 3천 번을 넘게 읽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전해지고 있으니 그의 노력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늦은 나이임에도 58살에 급제해 ‘정선군수’, ‘동지중추부사’를 지냈으며,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인정받았다.

그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배우는 이는 재능이 남보다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마라. 나는 어리석었지만, 끝내 이루었다. 부지런해야 한다. 만약 재능이 없거나 넓지 못하면 한 가지에 정진해 한 가지를 이루려고 힘써라. 여러 가지 옮기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보다 낫다. 이 모두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타고난 체격과 지능보다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재능일지도 모르기에 부족하다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멈추지 않는 이상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노력의 끝을 가늠하려 드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최근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시리즈’ 경기가 세관의 관심을 끌었다. 올 해도 일방적으로 어느 한 팀이 손쉬운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면서 수많은 야구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맘 때가 되면 언제나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영구결번 11번이 생각난다. 무쇠 팔의 전설, 바로 ‘최동원’ 투수의 번호다.

1984년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결정전에 7차에 걸친 경기 중 무려 1, 3, 5, 7차전의 경기에 최동원 투수가 선발로 나왔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선발 출장이라는 것은 아마추어 동네 야구에서도 하지 않는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당시 약체의 팀으로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롯데는 대안이 없었다. 1차전 선발 등판 완봉승, 3차전 선발 등판 완투승, 5차전 선발 등판 완투패, 6차전 구원 등판 구원승, 7차전 선발 등판 완투승, 5경기 등판 4승 1패.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한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최동원은 전설이 되었다. “아이고! 자고 싶어요.” 우승 직후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에 최동원 선수가 대답한 말이다. 그리고 참가한 우승 축하파티에서 코피를 쏟으면서도 동료들과 끝까지 자리를 지킨 남자였다. 2011년 9월 14일 대장암으로 인해 향년 54세로 세상을 떠난 최동원 선수는 아직도 많은 야구팬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재미있게도 최동원 선수는 홈런을 많이 얻어맞던 투수이기도 하다. 공격적인 정면승부를 즐기던 선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 타석에서 홈런을 친 타자에게 홈런을 맞았던 공과 같은 공을 던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어디 한 번 다시 때려봐. 또 칠 수 있으면 네 실력이 좋은 거고, 못 치면 아까 그 홈런은 우연이다.’ 이런 투지를 가진 선수이기에 한 시즌 223개의 삼진이라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별은 하늘에만 떠 있다고 별이 아니에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고, 꿈이 돼 줘야 그게 진짜 별이에요.” 가을산이 주는 진실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어째서 최동원 선수의 말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이, 가진 바 모든 것을 활활 불태운 기개가 아마도 아낌없이 주는 가을산의 나무의 기개와 흡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는 85세에 10권의 곤충기를 완성하고 생을 마감했다. ‘미켈란젤로’는 90세 마지막 순간까지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만들었다. 미국의 화가 ‘모지스’는 75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01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기며 화가로서 열정을 불태웠다. 평범한 일상이 빛나는 그의 작품은 지금도 우표나 카드에 꾸준히 사용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는 말했다. “인생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 창의적 노화(老化)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굳어진 인식, 습관, 통념이 주는 편안함을 거부하고 새로운 경험을 마다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세계적인 노화 학자 ‘마크 윌리엄스(Mark Williams)’는 “습관이 주는 편안함의 유혹을 이기는” 것에서부터 잘 늙기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노년과 창조력은 무관하지 않다. 어릴 때 장래 희망을 상상하듯 노년에 주어진 시간을 새로운 일을 해내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가을산에 서있는 모든 나무들은 인생으로 치면 노인의 입장에 서있는 나무다. 하지만 모든 진실이 그러하듯 봄에 다시 생동하는 청춘의 삶이 나무에게 다시 주어지는 윤회의 한 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무처럼 비록 새 봄에 다시 솟아나는 잎을 피울 수는 없지만,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늙지 않으려 하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청춘의 기운을 스스로 피워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거미 같은 사람, 개미 같은 사람, 꿀벌 같은 사람이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있으나마나 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을 말함이다. 거미는 좋은 길목에 진득진득한 줄을 쳐놓고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파리, 모기, 잠자리, 매미 등 곤충들을 잡아먹는다. 세상에는 거미 같은 인생이 있다. 살인, 절도, 강도, 강간, 사기범 등이다. 개미 같은 인생도 있다. 겨울을 위해 여름에 일하는 지혜가 있고, 동료간 협동심도 뛰어나다.

그러나 자기보다 약한 개미를 무참히 죽인다. 개미는 집단이기주의의 상징이다. 자기들끼리는 협력하지만, 다른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꿀벌은 꽃들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꿀을 가진다. 그리고 자기 몸에 꽃가루를 묻혀 열매를 맺게 해준다. 우리는 꿀벌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지 않는다.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산다. 우리 모두 꿀벌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가을산을 오르다가 어느 때 쯤 조금 힘에 겨워 다리를 펴고 잠시 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를 바라보자. 그들의 착한 웃음과 너그러운 손길을 느껴보자.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가을산을 향한 사랑을 함께 사랑해보자. 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 때로는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불완전한 사람을 사랑한다. 완벽한 인격, 완전한 인품으로 남들의 위에 군림하기보다는 그저 남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구는 보통의 사람들을 사랑한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된다고 너무 따지지 말자.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게 세상사인데, 너무 따지다 보면 좀스러워지고 마음마저 번거로워질 것이다. 누군 이래서 나쁘고, 누군 저래서 좋지 않다고 흉보지 말자. 이러할 수도 있고 저러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의 성품인데, 이 사람 저 사람 흉보다 보면 되레 자신이 욕먹게 될 것이다. 이것도 틀렸고, 저 일도 잘못 되었다 너무 나무라지 말자. 살다가 보면 실수도 있고 그르칠 수도 있는 일인데, 너무 자주 나무라면 누구나 사기와 용기가 꺾일 것이다.

이 사람은 잘났고, 저 사람은 잘 산다고 부러워 말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게 이 세상인데, 남들 부러워만 하다가는 자신만이 초라해지게 될 것이다. 남이 해놓은 일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비난하지 말자. 자신이 직접 한다면 그 보다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니, 남 비난하기보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편이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사 왜 요 모양, 요 꼴이냐고 탓하지 말자. 시비도, 선악도, 행, 불행도 있는 게 인생사이니 세상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다듬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몸을 낮추어 세상을 바라보자. 다른 생각 없이 보면 진실이 보이게 될 것이니, 세상사에 마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하다. 걱정이 없는 날이 없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다. 어느 것 하나 결정하거나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내일을 알 수 없고 늘 흔들리기 때문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든 이야기다. 말로는 쉽게 행복하다, 기쁘다고 하지만 과연 얼마만큼 행복하고 어느 정도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막막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가치, 그리고 고유의 의미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이야 말로 각자의 인생에서 만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이요, 가장 큰 기쁨이다. 아무리 화려해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여 오래 입지 못하듯이, 어린아이의 순진한 모습을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듯이, 우리의 마음도 순결과 순수를 만나게 되어 절로 기쁨이 솟아나 행복해지면 좋겠다. 조금은 모가 나고 부족하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단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조금의 불편함이 생길 뿐이다.

남의 모든 것을 의식하는 것도 좋겠지만 때론 자신 속에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어 나가는 것도 편리하고 쉬울 때가 있다. 너무 복잡하고 힘들게 어렵게 어기기 보다는 조금은 순리대로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얻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좀더 깊고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선 ‘세종’ 왕조 시대 ‘병조판서’와 ‘대제학’까지 역임한 ‘윤회(尹淮)’가 젊은 시절의 일이다. 윤회는 시골길을 걷다가 날이 어두워져 여관에 묵게 되었다. 행색이 지저분한 그에게 주인은 투숙을 허락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그는 처마 밑에 앉아 있었다.

마당을 보니 주인집 아이가 구슬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실수로 구슬을 떨어뜨렸고, 구슬은 데구르르 굴러서 장독대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구슬이 안 나오네...” 아이는 곧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거위 한 마리가 구슬을 찾아내더니 꿀꺽 삼키는 게 아닌가? 얼마 후 여관집 안방은 난리가 났다. 귀중한 흑진주를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곧 여관 주인은 윤회를 의심했다.

그가 훔친 것이 틀림없다면서 다음날 관가에 고발하겠다고 윤회를 기둥에 꽁꽁 묶어 놓았다. 윤회는 침착한 말투로 자기 곁에 거위도 함께 묶어놓아 달라고 청했다. 다음 날, 윤회를 주인이 관가로 끌고 가려고 하자 그는 우선 거위 똥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주인이 그 말대로 하자

그 속에 흑진주가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 거위가 진주를 먹었다면 그렇다고 어젯밤에 얘기를 하지...” 주인은 무안하고 미안하여 오히려 타박을 했다.

그러자 윤회는 말했다. “만약 내가 어젯밤에 거위가 진주를 먹었다고 말했다면, 당신들은 분명 거위를 죽였을 겁니다. 하룻밤만 고생하면 거위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입이 간지러운 것을 참았지요.” 쏟아지는 은빛 햇살처럼 빛을 머물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삶은 축복이다. 무심한 대지를 깨우는 가을비처럼 설레임을 아름드리 안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하루는 감동이다. 흔적 없이 사라져갈 허무(虛無)의 동산에 영혼을 촉촉히 적셔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가슴은 사랑이다.

수확보다 상실이 많은 삶의 굴레에 다시 시작으로 다짐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내일은 꿈밭이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해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심어준 당신은 생을 살찌우는 눈부신 선물이다. 가을산을 사랑하고, 가을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면 이미 당신의 가슴은 천국이다. 가을을 살아내면서 스스로 외로워할 줄 알고, 그래서 다른 외로운 사람들을 감싸줄 줄 아는 인격을 갖추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것으로 사랑의 완성이다. 그렇게 가을을 산다면 당신의 사랑은 영원이다.             /toda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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