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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림삼초대 詩 '서정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을 때는 후하게 선심 쓰며,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림 삼 /칼럼니스트.작가. 시인

詩作NOTE -

 

抒情(서정)’이라는 단어의 뜻은 사물(事物)을 보고 자기(自己)가 느낀 감정(感情)을 나타냄이라고 한자 사전에 나와 있다. ‘주로 예술 작품에서,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 냄이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이 뜻 가운데 필자가 좀더 생각해보고자 하는 단어는 감정이다. ‘감정 感情, feeling’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한다. 전에는 심리학에서 감각과 감정을 구별하지 않았으나, ‘J.워드‘W.분트는 감각은 객관적이며, 감정은 주관적인 것이라 구별하였다.

 

감정은 인식작용이나 충동의지와 다른 것이지만 엄밀히 구분할 수는 없다. 감정과 의지가 하나가 된 정의(情意)를 독일어에서는 ‘Gemüt(心情)’라 하고, 학술적으로는 감정과 지각(知覺)이 합쳐진 상모적지각(相貌的知覺)’이라는 현상도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 ·() ·()’로 의식(意識)을 구분하는 견해는 부정되고 있다. 감정의 발생 원인에는 많은 분류가 있는데 생리적, 신체적 원인을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감정은 신체에서 그 원인이 수반된다. 가령, 몸을 의지할 곳이 갑자기 없어지면 공포심이 일어나고, 몸을 짓눌러 자유를 빼앗기면 노여움이 일며, 몸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면 쾌감이 생기고, 겨드랑이나 발바닥을 간지르면 웃음이 나오며, 몸을 세게 치면 고통의 감정이 발생한다. ‘W.제임스‘C.랑게는 감정을 신체적 변화의 느낌이라 보고, 유명한 제임스 랑게설()’을 주장하였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픈 것이고, 무서워서 떠는 것이 아니라 떠니까 무서워지며, 우스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우스워진다는 학설이다. 일면의 진리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희로애락(喜怒哀樂)처럼 격렬하고 강하지만 폭발적으로 표현되어 오래 지속되지 않는 감정을 정서(情緖)’ 또는 정동(情動)’이라고 한다. 타오르는 듯한 애정, 강렬한 증오 등도 이에 속한다.

 

이에 비해서 약하기는 하지만 표현이 억제되어 비교적 오래 지속되는 감정을 정취(情趣)’라고 한다. 공포는 정서이며, 걱정과 불안은 정취이다. 격노(激怒)는 정서이지만, 상대방에 대한 불유쾌한 생각은 정취이다. ‘홍소(哄笑)’는 정서이고 미소는 정취이다. 그 밖에도 유머·분함·행복·비애·외경(畏敬) 등과 같이 가치의식이 가해진 안정적이고 영속적인 감정이 있는데, 이를 정조(情操)’라 한다. 이는 가치감정이기 때문에, 그 가치에 따라 도덕적·종교적·예술적·과학적 정조로 나눌 수 있다.

 

일상에서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자주 사용하는 감정이라는 말이 실상 참으로 복잡하고 오묘한 뜻과 함축을 지니고 있다니, 이제부터는 단어 사용에도 조금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그렇다고 우리말을 겁내거나 사용하는 데 망설이자는 건 아니다. 그저 작은 단어조차도 큰 뜻을 품을 수 있으니 늘 언어생활에 신중하고, 의미를 깊이 새기면서 대인관계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발상이다.

 

직업상 필자는 참 많은 단어와 언어를 곁에 두면서 애용하고, 덕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말과 글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생각을 전달하면서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언제나 필자의 감정을 상황에 맞게 전달하고자 애를 쓰면서, 소위 글밥을 먹고 사는 게 어느새 평생의 과업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나 남들의 언어 표현이나 단어 사용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삶의 방편이 되어졌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마도 말의 중요성과 신중함을 빗대는 속담일 것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친한 관계일수록, 더욱 더 말을 조심하고, 말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행여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여 좋지 않은 관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관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명심보감에는 급난지붕(急難之朋)’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친구()’라는 뜻이다. 영어로 하면 ‘A friend in need’이다.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술 먹고 밥 먹을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는 천 명이나 있지만,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정말 각박하고 이기적으로 흐르는 요즘 현실이 그러하기에 이 말이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을 때는 후하게 선심 쓰며,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평소에 내 앞에서 그렇게 잘 하던 사람이, 내가 막상 큰 시련을 맞았을 때 나를 외면한다면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들까? 잘 아는 선배 한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직장 그만두고 1년 공백기 동안 진실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확실히 재정리가 되더라. 정말 값진 1년이었다."

 

나의 친구들이 주식형제(酒食兄弟)인지,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또한 나는 그들에게 진정한 급난지붕(急難之朋)인지,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친구의 잘못은 모래 위에 적는단다. 밀물에 지워지라고! 그리고 친구의 고마움은 바위 위에 새긴단다. 비바람에 견디면서 영원히 기억하라고! 또한 친구의 눈물은 구름에 올려 놓는단다. 힘들면 비가 내릴 때 같이 울어주라고!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섭섭한 일도 생기고, 고마운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마움은 빨리 잊고, 서운한 감정은 오래 남겨 두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마움은 오래 오래 기억하고, 섭섭함과 서운함을 빨리 잊고 산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잠시 급한 마음을 접고 생각을 해본다.

 

요즘 뜻하지 않은 삶의 행보로 인하여 여동생 일가족과 동거를 하고 있다. 뒤늦게 변화된 일상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과 수고를 감행하고 있는 그 가족들을 바라보며 늘 짠한 마음이 든다. 빨리 자리를 잡고, 소위 말하는 안정기에 접어들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재산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보다는 불행에 빠지기가 더 쉽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이룰 때 느끼는 성취감, 기쁨, 이런 감정들이 바로 그런 행복이다. 행복은 돈이 많다고 해서 느낄 수가 있는 값싼 감정이 아니다.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가 없다. 진정한 행복은 힘든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러한 노력 속에 있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보이는 것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탐을 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부터 아끼고 사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군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길 기다리지 말고, 나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만들어 가면 그 결과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다. 행복에 있어서 셀프정신을 갖는 것과 남에게 미루지 않는 것이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행복은 향수와 같다. 자신에게 먼저 뿌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뿌릴 수가 없다. 이 기본적이고 쉬운 진리를 깨닫기가 참으로 힘들고 먼 길인 것 같다.

 

혹시 행복해지고 싶은데 지금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문제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사랑을 가득 담고 미워하는 이를 찾아가 손 내밀면 그와 함께 화평의 웃음을 나눌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지금 내가 가난으로 삶에 지쳐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문제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정성과 인내를 채우면 쉽게 좋은 일을 얻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방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 내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순수한 사랑의 설레임만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계속되는 만남이니까 말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불만이 싸여 얼굴이 어둡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문제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감사라는 단어를 살며시 넣어보면 금세 내 얼굴은 밝아질 테니까 말이다.

 

지금 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의 가장 작은 문제다. 이 문제의 해답은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정직하고 소박한 목표가 정해지면 나는 금방 잘못된 옛 길을 벗어나서, 좁지만 아름다운 새 길을 걷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제 이후로는 보지 않았거든 보았다 하지 말고, 듣지 않았거든 들었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릇된 선입견이 눈을 멀게 하고, 요망한 세치 혀가 입을 갉는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겉이 화려하다고 그 사람 생활까지 요란한 게 아니며, 차림새가 남루하다고 그 사람 지갑까지 빈곤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과 말 한 마디 섞어 보지 않았다면 낮은 눈으로, 작은 그릇으로 그의 점수를 평하지 말아야 한다. 나 또한 완벽치 않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입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다. 칭찬에 발이 달려 있다면 험담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나의 말은 반드시 전달된다. 그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추측을 하고, 단정을 지으며, 말을 지어내고, 또 소문을 내고, 남의 얘기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입이 바로 그릇이고 인격이다.

 

혀를 다스리는 것은 나지만, 내뱉은 말이 결국 나를 다스린다. 귀로 남의 그릇됨을 듣지 말고, 눈으로 남의 잘못을 보지 말며, 입으로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니, 이것이 우리의 도리다. 내가 가졌다 해서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내가 크다고 해서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며, 나의 용맹을 믿고서 상대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함은, 꽃잎이 모여 꽃이 되며,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미소가 모여 웃음이 되듯, 기쁨이 모여 행복이 된다는 영원한 진리의 시작과 맥을 같이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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