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마치 근대문학에 속한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이 시는 림삼 제 7시집인 ‘구름에 달처럼 살아가는 이야기’에 수록했던 시이니 아마도 1990년대 초반 무렵 지은 시인 듯 하다. 내용을 보니 그다지 오래된 시절은 아닐지라도 35년 전 사회의 면모가 일부나마 사실적으로 드러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우선 당시 시내버스 요금은 450원이었고, 지불할 때 10원짜리 동전이 통용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담배 한 갑이 2,000원이라면 비교적 고급이었을텐데 종류는 모르겠다. 필자는 마흔 전인데도 이미 머리가 벗어지고 흰머리가 생겨난 상태였구나. 예나 지금이나 실없고 엉뚱한 위인인 건 일편단심 초지일관으로 동일하다.
기사의 매서운 눈초리를 속이며 과감하게 100원을 착복(?)하는 재주가 가히 일지매 수준이다. 이런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돈벌이를 했었을까? 고백하건대, 필자는 본래 새가슴이니 아마도 심장 떨려 더는 못하고, 그 거 한 번만 하고 그쳤을 것이다. 그 한 번의 일탈이 너무도 용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대견해서, 밤 중에 차마 잠 못들고 시를 적은 걸 보니 흥분지수를 가히 알 만 하다. 아무튼 예전의 시를 대하면서 추억을 되새김하는 재미가 이리 쏠쏠하니, 이따금 심심할 적엔 해묵은 시들을 꺼내보면서 시간여행 놀이에 젖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한 때는 시간이 멈춘 듯한 환상에 빠져 무료함의 끝을 겪은 기억이 있다. 도무지 무슨 일을 할지 조차 생각이 안 나 그냥 멍 때리기의 끝을 향해 온 열정을 쏟아붓던 시절이었다. 일어나기도 귀찮아 누운 상태로 먹는 것도 마다하면서 늘어지게 잠만 잠만 잤었다. 한동안 씻지도 않고 그저 무력하게 심신을 방치하다보니 사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마저 거북하고 마음에 안 들어 스스로 목을 죄어보기도 했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텅 빈 공간에서 무한의 시간이 지루하다 여겨져, 머무는 곳이 바로 세상의 끝이라는 착각을 합리화하면서 그렇게 죽지 못해 지내다가 결국 살아났다.
그리고는 그걸 꿈이었다고 여겨 합리화하면서, 악몽의 결집을 겪어 이겨낸 육체에게 주는 상급으로 다시금 삶이 찾아주었다는 경험은 환희와 충만의 새 세상이었다. 뜬금없이 형이상학적인 고해성사를 하려니 조금 무안하고 멋적은 느낌이긴 하다. 하여튼 필자는 그런 시절을 체험했다. 무려 5년 가까운 세월을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과 연단을 반복하면서 마치 50년 보다 길게 여겨지는 세월을, 단언컨대 살되 헛살았었다. 예컨대 필자가 경험한 50대 중반녘의 그 삶의 흔적은, 이후 이어지는 삶의 본질이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하늘 섭리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의 이야기들이 지금은 추억으로 뭉뚱그려 시가 되고 노래가 되기도 하지만, 당시는 한숨과 통곡과 울부짖음이었던 걸 종내 잊지 못함이다.
누구에게나 가슴 저리고 서글픈 옛 이야기들은 있을 것이다. 감추고 싶으며 숨기기 급급한 치부도 있을테고, 되새기는 것 조차 몸서리쳐지는 애달픈 사연들과, 살아가기가 차마 버거울 정도로 뼈마디가 시리고 눈시울 적셔지는 그런 기억들이 다들 저 깊은 마음 속에 은밀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현실을 사는 데 약이 되고 길이 되며, 실족하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차마 잊지는 못하고 변치 않는 설움으로 자신을 늘 자극하며, 슬그머니 오늘의 불안을 부추기기도 할 거다. 그렇게 사람들은 살면서 눈물겨운 사연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그게 삶이라고 여기면서 산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어차피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명답은 있다고 한다. 스스로 정한 규칙과 공식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온갖 영양분과 생명수를 공급받으면서 우리는 주어진 길을 간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건지, 아니면 죽어가는 건지 구분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맞는 말이니까 말이다. 그냥 우리의 삶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교차되는 수레바퀴인 양 쉬지 않고 구른다는 진리, 그래서 그것들이 하나로 꿰어져 있고, 결국은 모든 인과가 상호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그러면 되는 거다. 호박같은 세상인데 행복이 별 건가?
그저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어울려 인연을 만들어가며, 사람들 속에 파묻혀 더불어 숨을 쉬면서 함께 살아가는 게 행복이며 꿈이다. 어차피 그 속에서 성취와 보람도 찾을 수 있고, 때로는 원치 않는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한다. 그렇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시간의 이끌림에 기왕지사 맹목적으로 끌려가기보다는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성공과 승리의 결실을 추구하다보면 삶의 행복이 비로소 변곡점을 드러내는 법이다. 아닌 것 같지만 분명한 진실인 변검 속의 얼굴을 말이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당신과 인연을 맺은 몇 안 되는 사람들, 그들에게 당신은 과연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 당신의 지인 중에는 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신의 개성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늘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게 마련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해준 사람이며,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 사람은 잊혀질 수 없는, 마음에 담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반면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상처, 피해, 아픔을 준 사람을 가리키는 거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오늘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슴에 새기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지를 판단하고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니 혹여 잠시 스쳐가는 사람이라고 여겨 함부로 말하지 말자. 스치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대하여야 한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많이 관대해지자. 그리고 한결 같자. 그러면 유독 향기가 나는 꽃처럼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
짧지 않은 인생길, 물론 살다보면 늘 한결같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다. 거친 세상 살다보니 결코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꼬불꼬불한 산길과 숨차게 올라야 할 오르막길, 그렇지만 너무 힘들어 금방 쓰러져 죽을 거 같아 주저앉았을 때, 작지만 밝은 빛이 보이는 등대 같은 길도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숨 가쁜 인생길, 이리저리 넘어지다 보니 어느새 곁에는 함께 길 가는 벗이 생겼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아껴주는 아름다운 이들이 함께 손 잡고 같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코 만만치 않는 우리네 삶, 그럼에도 스스로 터득한 삶의 지혜와 깨우침을 준 인생에게 참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우리의 내일을, 처진 어깨 감싸주고 토닥이며 참 좋은 이웃들과 함께 가는 동행 길, 그들 또한 삶의 선물이며 행복이 아니던가? 옛적 기억 속의 그들은 착한 추억을 되새기게 해주니 참 친절하고, 오늘 현실 중의 그들은 활력 넘치는 삶을 넉넉하게 호흡하도록 해주니 참 다정하고, 내일 상상 속의 그들은 꿈과 기대를 심어주기에 참 아름답다. 그렇다. 삶 속에 언제나 함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한 행운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