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 /칼럼니스트. 작가. 시인
- 詩作NOTE --
우리나라를 축복받은 나라라고 부르는 여러 가지 근거 중에 단연 첫 손가락에 뽑는 이유는 바로 사계절이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철 따라 바뀌는 자연의 모습과, 그에 적응하는 사람들의 먹거리, 입성 등 계절에 순응하는 생활의 모습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다복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정경으로 비쳐져서 적잖은 부러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기사 근래 들어서는 이 사계절이 조금씩 그 특성과 기간이 변모되어가면서, 절기의 본질을 무색하게 만들고는 있지만 말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절기가 요즘은 마치 여름과 겨울의 성격만 뚜렷하게 드러내면서 긴 두 계절만 존재하고 봄과 가을은 그저 이름 뿐인 특징을 보여주기도 하니, 이젠 사계절의 기후라고 부르기에도 자못 망설여진다. 그래도 역시 봄이면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새 생명과 꿈을 솟게 만드는 생명의 계절이라고 여기다보니,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대로 봄 한 철을 만끽하고 싶어서 누구나 여간 애를 쓰는 게 아니다. 봄은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소망이며 행복이니까.
그리고보면 정녕 정겹고 소담스런 단어다. ‘봄’! 왠지 모르게 미소가 머금어지는 단어 아닌가? 입술을 오무려 살며시 속으로 한 번 불러보라. “봄아!” 금세 대답하면서 곁으로 다가설 듯한 이 기분은 필자만의 착각인가? 우리 말 중에는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뜻과 여운을 지니고 있는 단어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인 단어가 바로 ‘봄’, 그리고 봄과 더불어 함께 피어나는 ‘꽃, 희망, 사랑, 평화, 빛’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꿈같은 단어들을 들 수 있다. 한 단어 단어가 하나같이 힘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에게 가슴을 내주고 손을 맞잡아주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우리의 아름다운 절기 중에서 무엇보다도 봄이 점차 짧아져가는 자연 현상은 참 아쉽고 서운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멋지고 고운 이 봄의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봄을 선택하여 곁에 두고 싶은 심정이다. 사실 우리는 이 봄이라고 하는 단어를 여러 분야의 현상에 대입하여 사용해 왔다. 정치, 경제, 문화, 의료, 체육... 어느 부분에도 봄이라는 단어가 개입되면 그건 바로 희망이고 포부이며 승리로 나아가는 영광의 순간을 의미하곤 했다.
정치에서 봄이라 하면 국민이 가장 우선이 되어 민주주의의 꽃이 피는 시기를 말했고, 경제에서 봄이라 하면 경기가 살아나고 산업이 활성화 되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모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문화에서의 봄은 세계 만방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우수한 결과를 양산하는 계기를 뜻했고, 의료에서의 봄이라 하면 팬데믹이나 집단 우울증같은 거대한 회오리 바람을 헤치고 일어서는 소망의 회복을 가리켰다. 아울러 체육에서의 봄은 전반적으로 침체된 경기력이나 낙후된 체육행정 하에서도 우수한 인재가 출현하여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어주는 계기를 일컫기도 했다.
이처럼 어디에서든 봄이 오면 활화산처럼 되살아나는 기적과 행운의 조짐과 더불어 싹돋움의 깊은 의미가 스며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넘쳐나는 희망을 잉태시키는 근원이 되어준다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들의 ‘봄 사랑’은 언제까지나 끝이 없다. 또한 봄을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면서 흩어진 힘을 모으고, 양보하고 존중하면서 갈라진 생각을 조율하는 저력을 보여주는 봄다운, 봄스러운, 봄닮은 ‘봄의 삶’을 조상대대로부터 살아온 것이다. 그게 우리의 역사이며 전통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봄’이 지금 정말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에게 조금밖에 남겨지지 않았던 봄의 따스한 조각조차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걸 이젠 우리 스스로가 절감해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난국이며 파행인 현실이, 뒤죽박죽된 질서와 안하무인의 횡포가 횡행하며 무법 천지가 도래한 현실이, 그리고 나만 옳고 정의로우며 상대방은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이, 그래서 모두를 단죄해야 하며 따라서 나만 홀로이 승리자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울부짖음의 현실이, 바로 지금 우리의 얼굴인 걸 우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얼마나 서글프고 통탄할 일인가? 오호 통재라!
과연 온 세계가 깜짝 놀랄 기상천외한 사건과 사고로 얼룩진 우리나라가 걸어가는 길의 끝에는 어떤 결말이 똬리를 틀고 있을까? 이제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긴급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떤 선택과 결정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질까? 누가 이기고 누가 패하는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물론 당사자들에게는 천지개벽의 상황이고 절대절명의 위기를 동반한 모험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들 일반 서민들은 그냥 지금처럼 너무나도 힘겹고 벅찬 하루살이같은 삶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의 삶이 될 수 있도록 민생을 돌봐주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그게 어느 쪽이든...
훗날 남에게 보여줄 자신들의 이력이나, 알맹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치적을 위한 정치 행로가 아니고, 당리당약을 추구하면서 서로 물고 뜯으며 밟고 일어서야만 산다는 승리와 패배의 논리에서 벗어난, 진심어린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나라가 잘 되고 국민이 잘 사는 내일을 열어갈 각오를 지닌 지도자가 출현하기만을 간절히 염원한다는 말이다. 누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반대하는 그만큼의 유권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항상 겸손하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 절차탁마하는, 진정 바람직한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모름지기 우리의 봄은 다시금 활짝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