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시문학파 김현구 시인을 기리는 문학제가 30일 전남 강진군에서 열린다. 강진 시문학파기념관과 현구기념사업회가 아! 그립습니다, 시문학파 김현구 시인 을 주제로 제1회 현구 문학의 향연 을 오는 30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시문학파기념관과 현구생가에서 다채롭게 펼친다. 김현구문학제는 100% 국비로 진행된다. 김현구 시인 타계 67년 만에 처음으로 치러지는 현구문학의 향연은 ▲현구 시집 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출판기념회 및 현구 장학금 전달 ▲김현구 대표 시 깃발전시회 ▲김현구 시 필사 ․ 낭독회 ▲학술 문학 강연(김종회 경희대 교수) ▲김현구 시인을 노래하다(축하공연) ▲문학관에서 사랑의 편지 띄우기 등 총 9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현구(玄鳩) 김현구(金炫耈) 시인은 1903년 11월 30일 강진에서 태어나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변영로, 신석정 등과 1930년대 활동했던 시문학파 시인이다. 1930년 시문학 2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벌인 현구는 문예월간 (1931), 문학 (1934) 필진으로 참여해 한국시문학사를 풍요롭게 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생애 85편의 시 작품을 남긴 채 1950년 6·25 참화
작가 림삼 - 시작노트 - 안전지대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별다른 기본적인 대비책조차 염두에도 없더니만, 자연의 느닷없는 혼찌검에 속수무책으로 소중하고 고귀한 삶을 털려버렸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엉겁결에 죄 없는 서민들만 길거리로 내몰리고, 불안과 공포의 나날들로 밤잠마저 설치고 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작금의 현실이다. 물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고 해서 예고도 없이 벌어지는 자연재해를 모두 방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최소한의 준비라도 갖추고나서 마주하는 자연의 경고라면, 그건 회한이라도 덜할 거라는 사실이다. 이미 수 차례에 걸쳐서 우리나라도 지진으로부터 완벽한 안전지대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증명된 바 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책임질 만한 위치의 위정자나 지도자들은, 그런 역사적인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볼모로, 서로의 약점이나 허점을 트집잡는 정쟁에만 몰두하느라 미처, 당면과제임에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는 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라고 하지만 기왕지사 벌어진 사태를 두고 더 이상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라도 바짝 정신 차리고, 뒷북 행정이라든
림삼 작가 - 시작노트 - 목하 만추지절이다. 가뜩이나 짧은 가을이 이따금 내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더욱 수명 단축의 비명을 지른다. 지금은 하루 하루 쌀쌀한 바람이 세상을 도배하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바야흐로 다음 주쯤이면 겨울이라는 소리 나올 법도 하다. 이름하여 환절기의 극점에 서서 오늘을 숨 쉬고 있는 셈이다. 아! 가을의 끝자락이라, 더 늦기 전에 눈꼽만큼 남은 감성과 낭만이나마 송두리째 반죽해서 마지막 가을 추억을 빚어야겠다. 회한이 없도록... 영화 ‘만추(晩秋)’ ‘이만희 감독 - 시작노트 - 목하 만추지절이다. 가뜩이나 짧은 가을이 이따금 내리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 때문에 더욱 수명 단축의 비명을 지른다. 지금은 하루 하루 쌀쌀한 바람이 세상을 도배하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바야흐로 다음 주쯤이면 겨울이라는 소리 나올 법도 하다. 이름하여 환절기의 극점에 서서 오늘을 숨 쉬고 있는 셈이다. 아! 가을의 끝자락이라, 더 늦기 전에 눈꼽만큼 남은 감성과 낭만이나마 송두리째 반죽해서 마지막 가을 추억을 빚어야겠다. 회한이 없도록... 문득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영화 ‘만추(晩秋)’가 떠오른다. ‘이만희 감독’의 23번 째
림삼 작가 - 시작노트 -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더 자주 눈에 띄고, 붙잡고 싶은 사람은 금세 떠날 사연이 생겨난다.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에게서 진한 연민을 느끼게 되다가도, 조금 자주 부딪치면 그게 또 이상스레 싫증이 난다.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든 마음 때문에 변덕을 부리게 되는 게 사람이다. 그런 일정치 않은 심리상태 가운데에서 자신도 모르게 특별히 이어지는 인연을 우리는 바로 필연이라 이름 붙인다. 그렇게 맺어지는 특별한 만남이기에 우리는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늘상 쉽게 보고, 만날 수 있다 해서 그것이 그만큼 가볍기만 한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소중하게 가꾸어야 하는 연분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우리는 이미 머리로 수긍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단계인 가슴으로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고, 어떤 것이 사람의 마음으로 연결된 만남인지를 알 길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우리의 만남들을 정말 보배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생기하거나 소멸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보고, 생멸에 직접 관계하는 것을 '인'이라고 하며, 인을 도와서 결
- 시작노트 - 가을이 오는 듯 하더니 어느새 건너 편 산자락, 치악이 붉으죽죽 물들었다. 매 해 이렇게 가을은 급하게 습격을 하는 녀석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올 해는 더욱 더 유난스럽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선풍기 바람 앞에 두고 반바지 차림으로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거늘, 어찌 이리도 스리슬쩍 가을 냄새 담뿍 풍기며, 소슬바람 몸짓 훠이 흉내내며, 품 속으로 홀연 찾아들었단 말인가? 이대로 두고보노라면 아마도 다시금 후다닥 제 갈 길로 떠날 차비 갖추고서 짧은 작별 고할 날도 금새 오고 말리라. 허니, 웬간해서는 이 조급증을 누를 재간이 없고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천상 얼른 가을이야기라도 몇 개 장만해야겠다. 가을볕살 아직 창창할 이 때 잽싸게 가을거리라도 나서서 가을인연 더러 맺어보아야겠다. 가을모습 사뭇 널널할 이 때 신속히 가을공원이라도 찾아서 가을추억 흠뻑 젖어보아야겠다. 잡는다고 머물지 않을 이 가을이 아주 저물기 전에, 가을하늘 올려다보며 절절한 동화같은 가을일기 물씬 써놔야겠다. 그리곤 이내 가을이 가고, 불현듯 가을 그리워질 제 하나씩 꺼내어 가을추억 아련히 늘어놓으며 그렇게, 가을이 아닌 어디에서든 가을로 살아봐야겠다. 지난
림삼 시인 - 시작노트 - 한동안 ‘도심의 공동화 현상’이라고 이름해도 될 정도로 밖으로만, 밖으로만 향하던 발걸음들이 되돌아와서 어느덧 제각각의 자리로 찾아들었다. 마치 빈 섬인 양 한산하던 거리들이 다시금 출퇴근 차량과 쏟아져나오는 인파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맞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일상의 얼굴이었다. 어쩐지 조금은 생뚱맞고 어색하더라. 지방으로 뻗은 각종 도로들과 대합실, 그리고 해외로 향하는 공항과 여객선 터미널 등에만 사람들이 몰려있다는 건 어울리지도 않고, 그냥 일시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일탈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 며칠 전의 그 긴 연휴에서 쌓았던 사연들은, 다짐들은, 계획들은, 다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는 번개처럼 제 자리를 찾았다. 마치 줄서기라도 하는 듯 아귀다툼의 현장에 속속 복귀했다는 신고를 해댔다. 마침내는 조금이라도 뒤쳐질세라 정신 바짝 차리고 재빠르게 우리의 이웃과 주변과 지역을 투쟁과 조급함의 전장으로 앞서서 도배질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바라보는 심사가 조금은 서글프고 우울해진다. 이 우매한 필자는 최소한, 넉넉하고 풍요로운 연휴가 끝나고 복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에는 이전과는 다른 여유가 조금씩은 깃
림삼 時 詩作 note 바야흐로 길고 긴, 마치 학창시절의 방학처럼 긴 연휴가 선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풍요로운 이 계절의 한 가운데, 더도 덜도 아닌 한가위 명절에 꼭 안성맞춤인 휴식의 시간들이 줄을 섰다. 어떤 사람들은 모처럼의 여행을 통해서, 또 어떤 이들은 반가운 친지들과의 해후로, 아니면 재충전과 활력을 위한 온전한 휴식의 기회로 삼아 이 황금같은 연휴들을 만끽하고 있으리라. 허기사 이도 저도 아니고, 어서 빨리 평소의 일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도처에는 많기도 할 거다. 나름대로의 답답하고 갑갑한 사정과 연유들을 가슴에 숨긴 채, 그저 얼른 연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심사라면 이야말로 퍽이나 측은하고도 안타까운 처지인 셈이다. 그리고 보니 사실 필자의 형편도 그리 밝지만은 않은 듯 하다. 딱히 찾아갈 데도 없고, 계획한 바 멋드러진 일정도 장만치 못한 입장인지라 그저 긴 시간들을 대충 홀로 보내면서, 추억과 망상을 적당히 섞어 생각의 모자이크를 수놓고 있음이다. 그렇다고 지지리궁상이나 떨고 있다는 건 아니다. 모처럼 ‘나 홀로 집에’를 실천하면서, 지치고 혹사당한 몸을 보살피고 있는 중이다. 뒷산에도 몇 차례 오르고, 글 쓰고 책 읽으
林森 작가 詩作 note 추분이 지났다. 이제 다음 주는 추석이 들어있다. 목하 가을의 한 가운데 이미 들어섰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여름의 끝자락 볕이 따갑더니만 어느새 슬금 소슬바람이 조석을 수놓는다. 신기하게도 잠시 딴 생각하는 새에 하마 이만큼 가을이 익었다. 길 가의 코스모스가, 뜨락의 귀뚜라미가, 높아진 하늘의 고추잠자리가, 누렇게 변색되어지는 들판이, 그렇게 가을을 대변하고 호흡한다. 온 천지에 가을 소리를 흩어뿌리며 가을이 흠씬 영글었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이 짧은 계절 가을은 또 후다닥 저 갈 길로 떠나가리라. 사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유독 짧아서 점만 살짝 찍고는 돌아서는 계절이 가을인지라, 웬지 모르게 이 계절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뭔가 꼭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에 종종걸음 치다보면, 작지만 격렬한 추억을 순식간에 심어놓고 가을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간다. 그래서 가을은 참 쓸쓸하고도 정겨운 낭만의 절기다. 가을은 잊혀졌던 사랑을 떠올리기에 안성맞춤의 절기다. 가을은 그래서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딱 맞는 제 철이다. 올 추석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길게 연휴가 이어지기에 아주 풍성한 중